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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조 - 제4대 세종(世宗)
    역사 2024. 6. 26. 02:26

    생애 : 1397~1450

    재위기간 : 1418~1450

    가족관계 : 소헌왕후 심씨 - 문종(제5대), 수양대군(제7대),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웅대군

                    영빈 강씨, 신빈 김씨, 혜빈 양씨, 숙원 이씨, 상침 송씨

     

    제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충녕대군은 첫째 아들인 형 양녕대군을 대신해 제4대 세종으로 왕위에 오른다.

    태종은 일찍부터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둘째인 효령대군과 충녕대군에게는 후계교육에 대한 제약을 하지 않았다. 자신처럼 형제간의 골육상잔을 겪지 않기를 바란 것인데 효령대군은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뜻밖에 불교에 빠져들게 되고 충녕대군은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학문에 심취한다. 방대한 양의 책을 100번씩 반복해서 읽은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 시기의 경험으로 교양이나 문화에 대한 깊은 조예를 갖게 된다.

    도를 넘은 양녕대군의 일탈과 탈선으로 결국 대신 왕세자로 책봉된 충녕대군은 책봉 2개월만에 왕위에 오른다.

     

    32년의 긴 재위기간 동안 세종은 비범함과 현명함, 추진력으로 많은 업적을 이루게 된다.

     

    1419년 우선 대마도를 한차례 정벌 후 1443년 일종의 화친조약으로 달랜다.

    1430년 농사짓는 땅에 대한 세금(전세)을 풍년과 흉년, 토질 등을 고려하여 차등적으로 징수하고자(공법) 전국에 6개월에

                걸쳐 17만명이 넘은 인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한다.

    1430년 노비들에게 출산휴가 100일을 주고 출산 1개월 전부터 노역을 면제시켜준다.

    1434년 남자노비에게도 출산휴가 30일을 준다.

    1436년 태종때 유명무실해진 의정부의 권한을 복구하는 의정부서사제를 실시함으로써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도모한다.

    1443년 훈민정음 창제

    1443년 중국이 아닌 서울을 기준으로 자주적인 달력인 칠정산 편찬

    1434년 예로써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삼강행실도 편찬

     

    이 외에도 집현전을 설치하고 과학기술발전, 음악집대성, 인재등용 등 일일이 열거가 어려울 정도로 많다.

     

    어린 시절부터 지독한 독서광에 육식을 즐겨하는데다 운동을 즐기지 않아 비만에 각종 성인병을 달고 살았다. 거기에 20대 초에 왕위에 올라 위에 나열한 수많은 업적을 이루기 위해 신하들 못지 않게 몸을 사리지 않아 결국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몹시 악화되었다. 자주 병석에 눕게되어 정무를 볼 수 없게 되었고 시각마저 희미해져 1442년 부터 세자 향에게 국정을 대리청정케 했다. 그러나 여전히 격무를 수행하며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1444년,1445년 5남 광평대군과 7남 평원대군이 연달아 죽고 1446년 왕비 소헌왕후마저 죽어 연이은 가족들의 죽음에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
    1450년 영응대군 집에서 향년 52세에 승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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